2011.05.11 16:57


인권영화 '시선 너머',  5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데뷔한 새터민 서옥별 양의 인터뷰와 영화전체에 대한 평론을 전합니다.

 

“새터민으로 산다는 것, 연기 아닌 연기 했죠”
[한겨레] ‘시선너머’ 데뷔한 새터민 서옥별씨
남한정착의 힘겨움 과장없이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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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들도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하는데, 음… 내 연기가 어색한 것 같아서….”
‘아닌데, 제법 연기가 자연스러웠다’고 해도, 부끄러운 듯 눈을 찡긋하며 손으로 입을 얼른 가렸다. 중학생 정도의 앳된 외모로 보이는 이 스무살의 여학생 서옥별(사진)은 두만강과 가까운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다. 16살에 중국으로 나와, 2년 전 남쪽 땅을 밟았다. 이곳엔 엄마, 6살 위 언니도 와 있다.

 

“북에서 한국 드라마 <마이걸> 같은 것도 비디오로 봤다”던 그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시선너머>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강이관, 윤성현, 김대승씨 등 감독 5명이 탈북자, 이주노동자,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인권 문제를 다룬 5편의 옴니버스 영화 중 ‘이빨 두 개’ 편에 북에서 온 중학생 ‘영옥’으로 나왔다. 영옥이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다른 반 준영이가 맞아 앞니 두 개가 부러진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북에서 온 이들을 남쪽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감성적 영화로 담아냈다.

 

지난 21일 경기도 안성의 탈북 청소년 기숙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만난 서옥별은 “연기란 게 어떤 건지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이빨 두 개’의 강이관 감독은 이 학교에서 지원자 50여명을 상대로 오디션을 봤는데 적임자를 찾지 못하다 한달에 한번 있는 학교 장기자랑에서 서옥별을 발견해냈다.

 

강 감독은 “‘나도 고생해서 여기에 왔는데, 나중에 정치를 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던 옥별이의 말도 인상적이었고, 다른 친구들처럼 대사 할 때 과장됨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교 3학년인 서옥별은 영화가 얘기하고 싶어하듯 북에서 온 자신들을 너무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생기면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 댓글도 보면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심하게 욕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실제로 일반학교로 전학 갔던 몇몇 아이들은 천안함 사태 이후 “너희가 그랬지?”란 소리를 듣고 이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베프’(베스트프렌드) 같은 친한 친구들 모두 어떤 학과를 갈까 고민”이라는 그는 가톨릭대 간호학과를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사회로 나가려면 필요하니까”라며 영어회화도 따로 공부하고 있다. “엄마가 경북 안동에 있는데, 몸이 안 좋으세요. 머리가 계속 아프시대요. 우리 엄마도 고쳐주고, 복지관 같은 데 가서 아파하는 노인분들도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배우 신민아를 좋아하고, “풍경화를 그리면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는 서옥별은 “아쉬움이 많이 들어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새 또 만화 캐릭터가 앙증맞게 그려진 양말 쪽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며 수줍어했다.  안성/송호진 기자,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기사원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745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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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객체를 뒤흔들다   
[문화] 인권위가 제작한 인권영화 <시선 너머>… 배타주의 넘어 나와 남을 다르게 여기지 않는 감수성들 

[2011.05.02 씨네21 제858호] 
 
 
2003년 첫 인권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이후 8년. 우익이 여전히 근육질 몸뚱어리에 대한 꿈으로 뒤척이는 동안, 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 덕에 인권 감수성을 훌쩍 키웠다. 인권을 택한 사람들의 숙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하는 인권 프로젝트 ‘시선’ 시리즈 2011년 작품 <시선 너머>는 타인의 인권 돌아보기를  넘어 이젠 구별짓기를 무지르는 광장으로 내달린다.

 

 

탈북자라는 처지의 ‘차이’


당대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시선 너머> 첫 번째 작품 ‘이빨 두 개’가 출발하는 현실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한국 아이들과 탈북자(북한이탈주민) 아이들의 바로 지금이다. 한 번쯤 탈북자 쉼터를 돌아보라면, 탈북자 아이들을 돌보란다면 엄두를 내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내 아이가 탈북자 아이 때문에 다친다면? ‘이빨 두 개’에선 배타주의의 가장 뾰족한 부분을 건드린다. 중학생 소년 준영은 학교 복도를 뛰어다니다 탈북자 출신 영옥이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아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준영의 부모는 억울하고 말이 막힌다. “애들끼리 놀다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어찌됐건 미안하긴 하네요.” 임플란트는 또 무엇이냐는 영옥의 어머니는 아예 말이 안 통하는 듯 보이는 까닭이다. 호기심이 생긴 준영과 미안해하는 영옥은 슬금슬금 가까워지지만, 이 또한 진심을 통하기 쉽지 않다. 진심이란 무엇일까. 사귄다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그냥 한번 놀아준 거야”라고 준영이 맞받는 말도 진심이고, 함경북도 청진이 어디쯤 있을까 북한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준영의 진심이다. 영화 <사과>를 만든 강이관 감독이 그려내는 소년의 마음은 풋풋하고 맑기만 하다. 그런데 탈북자 가족 셋이 앉아 하늘만 쳐다보는 좁은 아파트에선 진심이고 나발이고 그다지 소용없어 보인다. 준영의 말에 상처받는 영옥이나 담임 선생님이 너를 좋아한다고 해도 믿지 않고 “그냥 그런 척하는 거다”는 동생 영철의 말이 어떤 진심보다 무겁다. 이 영화는 결국 우리와 우리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온도차에 대한 이야기다. 이 차이를 모른 척하고선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으리. 실제 탈북자 출신 소녀면서 영옥 역을 맡은 신인 배우 서옥별이 영화에서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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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이관 감독 <이빨 두 개>, 김대승 감독 <백문백답>, 부지영 감독 <니마>. 
 
  

 CCTV 앞에 선 인권

 

<시선 너머> 5편의 연작 중 공교롭게도 2편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비추는 부조리한 현실에 주목한다. 전국에 300만 대 넘게 퍼진 CCTV는 지금 권력의 가장 유능한 대리인 노릇을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CCTV 영상정보자원 통합관제센터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헌법 해석상 보장돼야 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동일 감독의 영화 ‘진실을 위하여’에서 CCTV는 호텔이나 병원 경영자를 대신해 노동을 감시할 때는 정확하고, 없는 사람이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는 불통이다. 아이를 잃고 사과 한마디 못 듣는데다 ‘신상털기’(다른 사람의 신상정보를 퍼뜨리고 비방하는 일)까지, 영화 속 부부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만 연달아 일어난다. 김대승 감독의 ‘백문백답’에서도 CCTV는 성폭행당한 여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절대로 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피해자를 다그치는 형사의 질문을 통해 사건을 거슬러 올라간다. 배우 김현주는 광고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 성폭력을 당하는 희주 역을 맡아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진실은 피해자에게 등 돌리는 세상을 하나하나 공박하지만 그 외침은 크지 않다.

두 영화 모두 피해자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약한 자는 센 놈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최악으로 치닫지만 현실적으로는 꽤 정확한 기술일 수 있다. 인권을 떠받치는 것은 ‘사람은 모두 취약한 존재’라는 믿음이다. 사소한 부조리에 치명상을 입는 사람, 다음에는 당신일 수 있다. 함부로 희망을 부려놓기에는 인권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도 꿈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시선 너머>는 힌트를 남긴다.


 

시혜적 시선을 거두는 일


소통은 하나의 화제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부지영 감독의 ‘니마’에선 몽골에서 온 이주여성 노동자 니마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팔을 걷어붙인 정은이 모텔 청소를 하며 어깨를 맞댄다. 니마는 딸이 아이를 낳아도 가볼 수 없어 슬프고, 정은은 돈이 모일 때까지는 아이들을 데려올 수 없어서 슬프지만 쉽사리 말을 섞지는 못한다. 모텔은 배설의 공간인가. 방에 배설물을 싸지르며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사람들과 모텔방에 여자를 끌고 와서 두드려 팰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딘지 닮았다. 배설물을 함께 치우고 모텔방에서 두드려 맞는 여자를 구해주러 나서며 둘의 소통이 시작된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은 단속이 뜰 때마다 방 안에 숨어야 하는 불법체류자 신세의 니마다.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인권의 황금률을 그녀가 먼저 내밀었다. ‘니마’는 연대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배설의 공간이던 모텔을 자장가가 깃드는 안식의 공간으로 바꾸는 힘 말이다.

윤성현 감독의 ‘바나나 쉐이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는 물론이고 아예 이주노동자는 피해자, 한국 사람은 가해자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를 보다 보면 새삼 나는 어느 쪽인지 물어야 할 듯한 강박을 가질 때가 있다. ‘바나나 쉐이크’는 관객의 정체성을 묻지 않는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4명은 평등하다. 굵은 땀을 흘리며 짐을 날라봤자 그중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줄곧 이사를 거들어도 자신들은 여행 한번 못 떠나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물론 이사 도중 집주인의 귀금속이 없어지자 가장 먼저 닦달당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인 알빈이다. 문제는 봉주도 훔쳤고, 알빈도 훔쳤다는 사실이다. 비디오가게를 하다 망해서 이삿짐을 나르는 봉주나 필리핀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있는 알빈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 순결하지 않기도 마찬가지다. 봉주는 알빈에게 “너는 그게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타박하지만 봉주 또한 허술한 좀도둑일 뿐이다. 인권 조항의 하위 목록을 넓혀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혜적 시선을 거두는 일일지 모른다. 서른 살의 젊은 감독은 인권을 말하며 굳이 자신을 주체로, 남을 객체로 세우려던 관습을 흔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집주인 앞에서 봉주는 무릎 꿇고 사정한다. “사장님, 그게 아니라요, 아 씨, 왜 남의 일인데 눈물이 나죠.” 남의 일이라며 눈물을 흘리는데다, 알고 보면 남의 일도 아니다. 나와 남을 하나로 여길 때 눈물은 힘이 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이주노동자 그린 ‘바나나 쉐이크’ 윤성현 감독

“절망적인 인생에 이상향을 주고 싶었다”

 
올해 신인감독 잔치 속에서도 윤성현은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은 첫 장편영화 <파수꾼>이 1만7천 명 관객을 넘겼고, <시선 너머>의 4번째 작품 ‘바나나 쉐이크’에선 유쾌한 인권영화로 관객을 찾는다. 1982년생 젊은 감독이 생각하는 인권의 모양을 들어봤다.


Q. 이주노동자를 택한 이유는.

A. 외지에서 한국 사회로 온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들을 향한 편견에 늘 불편함을 느꼈다.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대하는 시각이 불편하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전제가 가장 큰 폭력이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장은 나쁘다는 편견을 깨려고 부러 온순한 사람으로, 부르주아적 집주인도 마음 약한 사람으로 그리려 했다.

 

Q. 알빈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로는 네팔 사람인데 필리핀 사람으로 그렸다.

A. 영화 말미에 봉주와 알빈이 보라카이 여행 광고 간판을 보며 언젠가는 저곳에서 살리라고 이야기를 나눈다. 돈을 벌려고 열악한 생활을 견디는데 실제론 희망이 없다. 이뤄질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몰라도 절망적인 인생들에게 이상향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끊임없이 띄우고 보라카이 이야기를 나눈다. 바나나 쉐이크도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늘상 이야기는 하지만 마시지는 못한다.

 

Q. <파수꾼> 주인공들도 철로에서 노는데, 감독이 떠나는 인생을 동경하는 것 아닌가.

A. 삶이란 게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국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며 너무 많은 허상을 봐왔고, 그렇게 도달하는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내겐 영화가 이상향이다.

 

Q. 영화 후반부가 전반부만큼 긴데.

A. “봉주야, 내가 가게 차리면 나를 사장이라 불러라” 같은, 알빈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후반부다. 장편영화에서는 생략을 추구했다. 세련된 화술은 생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권영화는 달라야 할 것 같았다. 촌스럽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싶었다. 후반부 봉주가 알빈에게 “너 저렇게 좋은 곳 살면서 한국에 왜 왔느냐” 묻는데, ‘코리안 드림’ 때문에 왔다는 생각이면 그건 착각이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엔 드림이 없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와서 한국에서 꿈을 펼친다는 조잡한 편견을 담은 단어다. 알빈은 꿈도 없는 곳에 돈 때문에 왔다. 그게 가장 비극적이다.

 

 

 

기사원문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5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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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공장장
2011.05.11 16:45

[권태선 칼럼] ‘무산일기’가 던지는 질문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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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선 편집인
 
 
 
북한이탈주민을 다룬 <무산일기>가 부산영화제를 시작으로 트라이베카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고픔에 지쳐 강냉이 한 자루를 사이에 두고 친구와 싸우다 친구를 죽이고 남한으로 넘어온 젊은이의 남한 내 생존 기록을 극도의 절제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과연 그 국제적 찬사에 값할 만했습니다. 특히 분신처럼 아끼던 강아지의 죽음을 주인공이 오랫동안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주인공 전승철은 125로 시작되는 탈북자 주민번호를 가진 까닭에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합니다. 벽보 붙이기나 노래방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관할구역을 침범했다고 주먹질을 당하고, 노래방에선 오해를 받고 쫓겨납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는 다른 탈북민들에게 사기나 치고. 그러다 보니 거리에서 주워 온 백구가 그의 유일한 마음붙이였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친구가 빼돌린 돈을 대신 차지하고 새 삶을 시작한 순간, 그 백구가 차에 치여 숨지고 맙니다. 주인공이 죽은 백구를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것은 그 속에서 폭력적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영화는 남과 북의 위정자들과 우리 사회가 북한 동포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전승철은 강냉이 한 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와 죽도록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도 북한 정권은 체제 수호를 위한 핵개발에 매달리며 나 몰라라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남한 사회도 그를 품어주지 않는 것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승철뿐이 아닙니다.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어김없이 남한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차별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배제와 차별의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2류 시민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북한 인권 전문가를 국가인권위원에 임명하고, 민간단체에서 북한 주민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킨다며 대북 전단을 뿌리는 것도 방치합니다. 그런데 유독 인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북한 주민의 생존권에 대해선 눈을 감습니다. 물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처럼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식량지원이 사실상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이 된다는 현실적 딜레마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식량 배분에 대한 모니터링을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적 딜레마를 내세워 동포들이 굶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군사적 문제와 연관시켜 대북 식량지원을 회피하는 것을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여 2류 국민으로 만드는 것 역시 그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나 프랑스의 이민자 폭동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소망스러운 것은 북한 정권이 북한 동포들의 생존을 감당하게 만드는 일일 겁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우선 인도적 식량지원으로 당장의 식량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주는 한편 체제에 대한 위협을 줄여줌으로써 가용자원을 체제 유지가 아닌 주민생활 개선에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재개가 긴요한 까닭입니다.

 

올해 들어 북한은 다양한 경로로 대화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터를 통해서도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제기했습니다.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며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남북한 주민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할 때입니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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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산일기'

 

그밖에 - 무산일기 영화평론 '솔직함은 힘이 세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745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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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공장장
2010.01.29 10:29

[불교]
_참선
안국선원 http://www.ahnkookz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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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깨달음의 장 (정토회)  http://www.jungto.org

_틱낫한 스님의 걷기명상 http://www.plumvillage.org

_위빠사나 http://www.vipassana.buddhism.org

_동사섭 http://www.dongsasub.org

_절수행 법왕정사 http://cafe.daum.net/sorisan






[기독교와 천주교]


깨어나기(기독교) 전원살림마을 http://www.theartoflife.co.kr

트레스 디아스(기독교) http://www.dktd.co.kr

치유수련회(기독교/크리스찬 치유상담연구원) http://www.chci.or.kr

장신대 영성수련(은성수도원) 031-532-9994

향심기도(천주교) http://www.centeringprayer.co.kr 

영신수련 (천주교) http://www.jesuits.or.kr

배동교육 (예수살이공동체) http://www.jsari.com

Merriage Encounter(부부피정/베네딕도수도원) http://me.catholic.or.kr





[종교 others]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불교 http://www.dalailama.com

초선(원불교) 원불교 만덕산 훈련원 http://cafe.daum.net/mdsan

원불교의 마음공부 http://www.wonbuddhism.or.kr

시천주수련(천도교 홈페이지) http://www.chondogyo.or.kr



핀드혼 공동체 http://www.findhorn.org

야마기시 공동체의 연찬회 http://www.yamagishism.co.kr
 
삿상 (인도식 아쉬람(공동체)) http://www.krishnddass.com

아리랑풀이 (아리랑산촌) http://www.arirangfree.or.kr

꿈작업 (신화와꿈연구회) http://www.mythsan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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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봐타 코스 http://www.avat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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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공장장
2009.11.12 14:57

며칠 전 친구에게서 등산길에서 만난 한 노신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른바 좋은 직장의 고위직에서 은퇴한 그분은 상당한 재산도, 괜찮은 아내도, 잘 키운 아들딸도 있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동행하게 된 친구와 걷는 동안 그분이 한 이야기는 전부 절절한 외로움의 호소였답니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지만 아들딸은 물론 아내하고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하고요. 항간에서 유행하는 ‘삼식이’ 이야기처럼 아내는 그가 온종일 나가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9시쯤 귀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저녁을 먹으며 정담을 나눌 친구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답니다. 은퇴한 옛 친구들과는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까닭에 만나도 여전히 공허한 이야기뿐이고, 그러니 자연스레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져 이렇게 혼자 산길을 걷는다고 했답니다.

문제는 이것이 그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입니다. 50대 중반인 남편은 요즘, 저녁 모임을 가면 은퇴한 남성들의 처지를 희화화하는 이야기들을 부쩍 많이 듣게 된다며 씁쓸해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가치 대신 ‘무엇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어온 탓이 아닐까”라는 친구의 말이 제 뇌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 따위만을 목표로 살았기에 그것을 놓는 순간, 인생의 행로를 잃고 만다는 것이지요.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을 놓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 대부분에겐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 따윈 사치스런 것으로 치부돼 금기시됐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지난해 1월 <문화방송>이 방영한 ‘열다섯살, 꿈의 교실’이란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한 중학생은 꿈을 묻는 질문에 “저희는요, 고등학교에 일단 잘 가서 대학에 잘 가면 그때 뭔가 꿈이 생기겠지, 다 이런 생각 갖고 그냥” 공부한다고 답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냥’ 공부하고 보면 꿈이 찾아오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학생의 생각과 달리, 대학에서도 태반의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많은 대학교수들이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혀를 찰 정도지요. 자기 자신도, 자신의 꿈도 모르다 보니 돈과 지위에 대한 열망만 높아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한국 사회를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힌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위의 예처럼 가족과 친구로부터 소외된 외로운 삶이기 십상입니다.

좀더 행복한 사회는 이런 식의 삶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삶의 방식이 되지 않을 때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권을 회복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삶의 주권을 되찾는 첫걸음은 자신에 대해 성찰할 용기를 되찾는 일입니다. 삶의 주권을 회복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겁니다. 아이들은 ‘일단’ ‘그냥’ 공부하는 게 아니라, 꿈을 먼저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게 되겠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무작정 무한경쟁에 내모는 대신 좋은 교육을 찾아나서게 될 거고요. 남성들은 자신의 일을 통제하면서 좀더 관계지향적인 삶을 모색할 수 있을 테지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69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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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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