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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이야기

「베캄교실」6회 '희정이의 일기'


요즘 일요일 오후마다 가는 곳이 있다.
동남아시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기웃거린 곳, 베캄 교실.
그 모임이 베캄 교실이라는 것도 모임에 몇 번 나간 뒤에 알게 되었다는.

 

베캄 교실, 무엇을 하는 곳인고 하니...
매주 일요일 오후에 모여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 캄보디아 사람, 한국 사람이 모여 열심히 얼음땡 같은 게임을 하고 몸을 쓰며 놀다가,
짧은 즉흥극 같은 연극으로 마무리를 하는 곳이다.^^
 

처음엔 서먹서먹했는데, 얼음땡을 한 30분 동안 신나게 하다 보면 땀범벅이 되면서
베트남, 캄보디아, 한국 국경을 넘어, 피부색을 넘어, 성별, 나이를 뛰어 넘어 친구가 된다.


얼음땡이 그렇게 심오하고 완벽한 게임이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잠깐 얼음땡을 소개하자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얼음땡은 술래가 오면 나만 얼음을 하면 그만인 게임이다.
그렇게 술래 빼고 모두가 얼음을 해버리면 끝나는 게임인데,
베캄교실 얼음땡은 다르다. 혼자서 얼음을 하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된다.


술래가 다가오면 재빨리 다른 사람을 부둥켜 안거나 부여잡고 함께 얼음을 외쳐야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많고 적고, 나라가 달라도 금방 친구가 되는 정말 신기한 게임이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베캄교실에 갔다.
시간이 좀 있어 여유를 부리다 버스가 막히는 바람에 모임 시간에 조금 늦었다.
건물에 들어서니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벌써 게임을 시작한 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주 동안 무얼 하며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새로운 두 친구가 보인다.
킴과 땅리홍이라는 잘생긴 캄보디아 청년 둘이 새로 왔다. 앗싸!!
그런데 사마트가 보이질 않네. 지난 주에도 아프다고 안 왔는데, 이번 주도 아픈 건가?


고작 몇 번 봤을 뿐인데,
열심히 몸을 쓰고 열심히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정이 든 것 같다,


오늘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한 30분 동안 얼음땡을 하며 온 공간을 누비고 돌아다니다 보니 땀범벅.
처음에 좀 긴장하는 것 같던 킴과 땅리홍의 얼굴도 많이 편해 보인다.


베캄교실에 명진행자 지향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던 사이가 지향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다 보면
어린 시절 죽마고우처럼 친해지는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의 연극 주제는 '가족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혹은 사랑하는 사람, 기억에 남는 이별을 조각보 연극으로 만드는 거다.
조각보 연극이란,
같은 모둠 사람끼리, 어떤 한 상황을 역할을 정해 정지된 화면처럼 연출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조는
베트남 여인 부티웻, 캄보디아 청년 사라이, 연다라, 한국 사람 동오, 희정 이렇게 다섯이다.
각자 정한 조각보 내용은,
부티웻은 베트남에서 가족과 떠나오던 날 공항의 풍경,
사라이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날 흥겨운 파티 풍경,
연다라는 캄보디아 공항에서 가족과 이별하는 풍경,
동오는 필리핀 자원활동 갔다 한국에 돌아올 때 친구들과 이별하는 풍경,
나는 아버지, 남편과 엄마 산소에 찾아간 풍경을 표현했다.


나한테 언니, 언니하며 잘 따르는 부티웻이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 흐느껴 울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연다라는 일 끝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해먹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나 울었다고 했다.
가족과 같은 한국, 것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가지도,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개구쟁이 막내 동생 같은 사라이는 가족과의 이별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날,
가족, 친구들, 친척들과 모여 '쪼무이(건배)'를 외치며 술도 마시고 전통음악에 맞춰 춤도 추었다고 한다.
언제나 밝은 사라이를 보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극은 도반능의 이야기였다.
도반능은 돈을 벌기 위해 아내, 두 살난 딸과 떨어져 한국에 와서 일하는 성실남이다.


도반능, 히엔, 땅리홍, 동진, 주영이 한 모듬이 되어,
차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세기적 이별을 표현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아내와 이별하는 장면,
베트남에 다시 찾아갔을 때 딸아이와 이별하는 장면이었는데,
아빠와 함께 살지 못했던 도반능의 딸아이 김지가


처음 아빠를 보았을 때 아빠라는 부르지도 않고  서먹서먹해하는 것에 도반능은 너무 슬펐다.
한달 동안 가족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도반능의 딸 김지는 마침내 '아빠, 가지 마!'라는 말을 하며 가슴에 안겨 울었다.


도반능의 딸 김지를 맡았던 히엔의 연기도 너무 훌륭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낯선 한국땅에 와서 돈을 버는 남편이자 아빠인 도반능의 슬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듬직하고 성실해보였던 도반능에게 이런 슬픔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가볍게 동남아시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거니 싶어 나갔던 베캄 교실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했을 때
그들의 말을 더 잘 알면 그들과 좀더 친해지지 않을까, 그들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베캄교실에서 한국어를 잘 하는 베트남, 캄보디아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희,노,애,락에 대해 알아가면서
지금의 나의 처지, 나의 환경,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고,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6월이면 베캄교실도 일단락된다.


벌써 헤어지는 게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헤어질 때를 걱정하며 아쉬워하기 보다
지금,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겠지.


베캄 교실 친구들, 화이팅!


이번주는 행복공장 일정으로 베캄 교실을 한주 쉽니다. 

더 많은 사진은 emoticon  http://happitory.org/4784 


 
 

IJP_4379.jpg 

열연중인 베캄 친구들~
(※왼쪽 두번째 이별의 아쉬움에 쉽게 가족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희정~)

 

[ 베캄교실 ]

서울 근교에서 살며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아 친구들과 한국인의 어울림. 여러가지 놀이와 연극을 매개로 하여 서로의 이해를 높이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간다.

일정_6회차 5월8일(매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행복공장
주최_행복공장
참가_다라, 도반능, 동오, 동진, 들풀, 마씨미은, 반지오, 부티웻, 사라이, 사마트, 세리, 준원, 지향, 히엔, 희정, 셍펜킴, 땅리홍 
(17명)
결석_반두, 세나, 은영, 용석, 파도
진행_지향(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공간-극단 해 대표 / 행복공장)

 

editor in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