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23:41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및 참가신청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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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 갇힌 채 하루를 보냈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고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1.5평짜리 방. 그곳에서 최고의 자유를 누렸다.


지난 주말에는 감옥에 갔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누군가를 면회 간 게 아니다. 내 발로 독방에 갇히길 자처했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진짜 감옥은 아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행복공장 내 안의 감옥'은 감옥 콘셉트의 명상 공간이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짧게는 20시간, 길게는 60시간 넘게 독방에서 보낸다. 많고 많은 시설 중에서 왜 감옥일까. 행복공장을 지은 권용석, 노지향 부부는 현대인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 권용석 씨는 오랫동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파묻혀 보냈다. 건강이 나빠지고 일에 지칠 때쯤 문득 감옥을 떠올렸다. 하루라도 독방에서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바람은 28개의 독방을 갖춘 '내 안의 감옥'으로 현실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감금을 전제로 하는 내 안의 감옥은 자율성을 가장 중시한다. 갇혀 있는 동안 방에서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나도 이 여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감옥에 도착해 사회에서의 마지막 밥을 먹었다. 감옥 안에서는 고구마,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이 제공된다고 했다. 밥을 조금만 더 먹을까 욕심이 났다. 감옥은 감옥이었다. 수감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했다. 괜히 앞마당을 거닐며 햇살을 받고 바람을 쏘였다. 갇힌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일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 좋은 날에 감방에 들어가기로 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오후 2시. 방으로 들어섰다. 세로로 긴 방에는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었다. 다행이다. 이만 하면 웬만한 서울의 고시원보다 좋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큰 창이 있어 답답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짐을 풀고 휴대폰을 밖으로 내놨다. 이곳에선 책, 휴대폰, 전자기기의 반입이 일절 금지된다. 상사의 문자와 이메일, 허세 가득한 SNS와도 이별이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달칵. 밖에서 문이 잠기며 속세와 완전히 단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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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자 감옥에서 13년을 보낸 황대권은 한 평짜리 방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다고 했다. 한 평짜리 방안에서는 내가 우주요,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내 몸의 일부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독방에 들어오자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처럼 가만히 누워 나를 장난감 삼아 놀기 시작했다. 온몸을 쭉 뻗어 방의 크기를 재보았다. 팔을 양옆으로 쫙 뻗고 벽에 손이 닿을 1.5평의 크기를 몸으로 익혔다. 손과 발을 천천히 움직이다 스트레칭도 하며 나는 어느 시인을 떠올렸다. 집을 떠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머물던 시인 백석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가 말한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마침 내 방 앞에도 나무가 보였다. 나는 오랜 시간 누워 나무와 창밖으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했다.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게 참 잘했다 싶었다. 해가 지고도 밝음의 기운은 오래 대지에 머물렀다. 깜깜해질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았다. 자연의 빛으로 시간을 짐작하고 하루를 소비했다. 변하는 공기의 온도를 느끼며 밤을 맞았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글을 썼다. 엇갈린 인연들에 대한 미련, 스스로에 대한 불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 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푸닥거리하듯 글을 쓰며 응어리를 풀었다. 밤은 길었고 써야 할 말은 늘어갔다. 새벽이 되어서야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1시간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로 얼추 시간을 짐작했다. 오전 7시 30분. 문에 달린 구멍으로 아침 식사가 들어왔다. 지금 할 일은 먹는 일뿐이다. 오물오물 입안에 담긴 쌀죽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죽이 달았다. 한 번에 하나의 행동만 하니 감각은 더욱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내 자신과 마주하며 철저하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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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 속에 꼼짝없이 감금된 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고찰한다. 육체마저 감옥에 갇힌다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이중의 감금을 당한 영혼은 더한 고통을 겪거나 반대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갇혀야 드디어 깨닫는 것들이 있다. 비단 바깥의 공기, 햇살과 자유를 일컫는 게 아니다. 신체를 옭아매고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사회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야 나의 존재와 감각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오전 10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와 달리 인생의 수인囚人이 아닌 주인主人이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글 | 안하현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Posted by 행복공장장
2017.09.21 23:40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6]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행복공장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내 안의 감옥"은 단순한 방법을 통해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을 각각의 고유한 경험으로 이끌었다. 모두는 같은 것을 겪더라도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고 그만의 삶을 산다. 물리적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정신적인 여행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는 어쩌면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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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1시간의 간단한 OT와 함께 참가자들과 둘러앉아 1.7평 독방에 들어가기 전 소감을 말한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알 수가 없고 처음 참여하는 것이어서 경험 한 후에야 이것이 어떠할 지 알 수 있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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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니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스스로에게 어떤 과제나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데 해야만 할 것들을 손에서 놓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에 쫓기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 시작한 걸까?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가 방문의 사각구멍을 통해 들어오는데 방안의 나를 녹화 중인 소형 카메라의 렌즈를 보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전에 동의를 구했음에도 방송사에서 설치한 이 작은 검정색의 물체는 나의 사고를 자기 검열의 순환 고리에 묶어버렸다. 내가 뭘 했지? 요가를 했던 것도 같은데... 사실 그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카메라의 작은 메모리 칩은 세상 인파의 뇌였고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얼굴을 붉힐 만한 일은 없었는지로 생각의 틀은 줄어들었다.

* 김수연 님이 참가자로 출연한 SBS 프로그램 뉴스토리

줄어든 틀을 가만히 보다가, '네가 내 감옥이었니' 하는 생각에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가 원했을 나에게로 가는 길을 선택할 때 나는 그것을 타인의 시선으로 한정 지었다. 그들이 바라는 나는 사실 스스로에게 원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줄이기도 늘이기도 하면서 틀에 꼭 맞게끔. 그래서 스스로 하여금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라고 믿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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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나 뿐이고, 자유로웠을 나는 이미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의 나침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보지 않기로 했다. 그 전의 사고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어떤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각자의 삶에서 시선을 거두는 것이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의 여유를 준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나는 어떠해도 괜찮다는 걸 떠올려 보았다. 외국에서 고등학교 유학 시절 중, 특히 호기심 많고 천진난만하면서도 배려를 잃지 않는 친구들을 좋아했었다. 그 친구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만큼이나 스스로에 대한 존중도 잃지 않았다. 그들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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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방시간이 끝나고 다시 참가자들과 둘러앉아 소감을 이렇게 말하며 끝마쳤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제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혼자 있을 때는 타인에게 대하는 것처럼 존중과 배려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쯤에 제가 내 안의 감옥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 김수연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Posted by 행복공장장